칼빈주의와 알미니안 주의
3월 28th, 2009 at 3:17 오전 - Hoon (성경연구) · Print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 D. 스틸, C. 토머스 / 엠마오” 에서 요약 발췌하였습니다
알미니안파의 항의
1610년 네덜란드에서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제임스 알미니우스가 세상을 떠난지 정확히 1년 후에 그의 가르침을 근거로 해서 그의 추종자들이 5개의 신앙조항을 작성하였다. 알미니안 - 알미니우스의 추종자들 - 들은 그들이 작성한 신앙에 대한 5개조의 교리를 네덜란드 정부에 제출했다.[1]
알미니안들은 벨직 신앙고백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이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으로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전적 무능, 무저건적 선택 혹은 예정, 특별한 구속, 불가항력적인 은총, 성도의 견인에 관한 교리들에 대해서 반대했다. 그들은 위와 같은 내용들에 대한 네덜란드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변경되기를 원했다.
알미니안주의의 철학적 근거
제임스 패커는 알미니안파 속에 형성된 사상체계를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것이(역사 속에 알미니안주의로 알려진) 가지고 있는 신학은 두 가지 철학적 원리에 기초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거룩한 주권은 인간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어서 인간의 책임과도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능력(ability)은 의무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들로부터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추론을 이끌어 냈다. 첫째 성경은 믿음을 자유롭고도 책임을 져야만 할 행위로 간주하고 있으므로, 믿음은 하나님에게 원인을 두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분리해서 인간이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성경은 믿음을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할 의무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추론을 통해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성경이 다음과 같은 입장을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결코 완전히 부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이 자신 앞에 놓여질 때 그것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완전히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므로 그것을(복음을) 거부할 수도 있다.
- 구원 얻을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그들이 스스로 가지는 믿음에 따라서 이루어질 것임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예지에 의해 촉진되어진다.
-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떤 사람의 구원을 완전하게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 믿음을 보장해 주는 그러한 선물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각 사람을 위한 구원의 가능성을 창조한 것일 따름이다.
- 믿음을 지키고 은총의 상태에 계속 머물 수 있는 관건은 신자들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러므로 실패하는 자들은 유기 된다.
그러므로 알미니안주의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구원은 궁극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며, 구원하는 믿음은 자기 안에 계시는 하나님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로 간주된다.
도르트회의
1618년 알미니우스의 입장을 검토해 보기 위하여 도르트에서 국제적인 종교회의가 소집되었다. 그 회에는 84명의 회원이 참가한 것 외에도 18명의 정부에서 나온 위원들이 참석했고 독일, 신성로마제국, 스위스 및 영국으로부터 온 27명의 대표도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개월 동안 모두 154회의 회의가 열렸고, 마지막 회의는 1619년 5월 9일 이었다. 워버튼(Warburton)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 총회는 항론파가 발전시킨 5대 교리에 대해서 세밀하게 검토하면서 그들의 가르침을 성경의 증언과 상호 비교하였다. 그곳에 참석한 회원들은 항론파가 믿음의 법칙으로 유일하게 수용한다고 명확하게 밝히면서 선포했던 가르침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지 않음을 보고, 그것을 만장일치로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 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단순한 기각은 충분하지 못한 것이라 보고, 논의 되었던 문제들에 대한 칼빈주의적인 참다운 가르침을 밝히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칼빈주의적 입장을 5개의 장으로 구체화시켜 밝혔는데 이것을 칼빈주의 5대 교리라 부른다.
- 알미니안들이 그들의 5개조 교리를 항론의 형식으로 네덜란드에 정부에 제출하였기때문에 항론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back]
사과꽃향기
said,
3월 30th, 2009 at 1:26 오후
때로 이런 것들이 “소모적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때 전도사님을 통해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를 들었다. 결국 칼빈과 알미니안의 차이와 대동소이하군. 그 때 정말 잊혀지지 않는데…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어떤 사람들이 정립해놓은 것안에서 제약을 받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억울하기도 한… 마치 하나님과 나 개인이 만나야 하는데 하나님 뜻을 잘 안다는 신부님이라는 중개인이 중간에 껴 있는 듯한 느낌. 내가 성경과 만나야 하는데 성경을 잘 안다는 교리가 중간에 껴서 ‘이렇게 보는거야’라고 훈수 두는. 그리고 그들에 의해 수십년동안 믿는 것을 조종당하고 세뇌당하는.
나 역시 아직까지 황목사님과 합일을 못이루는 교리적인 부분이 있는데 역시 특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칼빈과 알미니안 교리차이 안에 있는 것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남편은 신학자들 사이에서 수세기동안 논쟁하고 의견을 일치 못시킨 것을 왜 그 한분과 의견을 같이 하려고 애쓰냐고 그만 고민하라고 한다. 그래서 그만 고민할려고했더니만 이런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군. 나는 일정부분 알미니안주의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가 있다.
진정한 진리(말씀)안에서 살아간다면 교리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교리의 불필요성을 얘기하는 것은 아님), 모든 교리와 사상에 초월하여 말씀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다. 역시 신학은 할것이 못돼 ㅋㅋㅋ
Hoon
said,
3월 30th, 2009 at 7:36 오후
교리가 논쟁의 주제가 된다면 그만큼 소모적인 것도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교리’는 바른 신앙의 태도를 가지게 하기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보통의 경우에 교리를 딱딱한 이론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좋아하는 분들이 드물지만, 본래는 매우 사랑(?) 스러운 것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논쟁의 가운데 있는 것이 교리이기도 하죠. 그래서 더욱 관심이 없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말도 복잡하구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논쟁은 결국 “하나님 중심” 과 “인간 중심” 이겠죠.
사과꽃향기
said,
3월 31st, 2009 at 6:15 오후
교리가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교사는 아이들에게도 교리를 가르쳐야한다고 배웠고 나 또한 교리를 배워왔고, 또한 내가 옳다고 믿는 교리가 아닌 배워온 교리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ㅠ.ㅠ 난 이 교단에 속해 있으니까.
그런데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종교에 대한 것도 아닌 다른 종파에 대해서 성경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건데 다 싸잡아 이단이라고 몰아붙이는.
마치 자신의 교리만이 전부이고 옳다는 냥. 칼빈 또한 많은 다른 교파들을 이단으로 처형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칼빈의 “하나님 중심”만을 강조한 것이 가져온 도덕적 해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고. 그야 ‘하나님 중심’이 의미하는 참뜻을 제대로 이해못한 사람들의 연약함이겠지만.
난 ‘하나님 중심’과 ‘인간 중심’ 중 택일의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 또한 전반적으로는 ‘하나님 중심’의 관점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이 두 관점은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한다. 상충되는 거라고 해서 공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Woosoon
said,
3월 31st, 2009 at 8:04 오후
아무것도 모르지만…
‘하나님 중심’과 인간 중심’의 문제는 택일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과꽃향기 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
조금이라도 인간중심이 되면 100 % 인간중심이 되는 경향이 100 %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은 결국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좋은 것을 인간중심이라고 한다면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인간 중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른 신학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른 신학이 바른 신앙을 낳기 때문입니다. 신학이 바르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로 전락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과꽃향기
said,
3월 31st, 2009 at 10:04 오후
모르는 거로 치면 제가 더 모르겠죠. 주인장께서는 이것이 전공이시고 저는 그런 분들께 어쭙게 주워들은 사람이니까. 이렇게 올려놓은 글을 읽으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사람이니^^
소모적인 논쟁이 될 것 같은…ㅋㅋㅋ
하나님 중심과 인간 중심의 택일문제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택일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저는 알미니안 주의가 다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미니안의 영향을 받은 웨슬레가 감리교를 창설했다지요. 감리교로 가야하나?하고 생각해본적도 있지만 ‘교리가 뭐 그리 중요해 말씀대로 사는게 중요하지’라고 생각하고 접었습니다. 그러나 교리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바른 신학이 바른 신앙을 낳죠. 그렇죠. 편향된 신학이 편향된 신앙생활을 낳기도 하고요. 이쪽에서 주장하는 바른 신학이 저쪽에서는 잘못된 신학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죠. 다원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고싶은 말은 너무 우리 교파의 교리만 옳다고 말하는 것들이 옳지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실 주인장께서는 속해있는 교단의 교리를 인정하시는 분이시니 제 말이 너무 위험하고 철없게까지 들릴 수 있겠네요.^^
Hoon
said,
4월 1st, 2009 at 12:26 오전
쿠후후후후~
역시 내 의도(?) 대로 논쟁이 시작되었군~~~ ㅋㅋㅋ
아~ 절대적으로 농담이구요~
글쎄요, 제 블로그는 약간의 논쟁조 라든지, 좀 뭔가 비판조 의 글들이 있어서 그렇지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만든 공간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는 의도가 더 있지요~
제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의 글을 올리기 시작한것은 제 자신이 좀 정리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구요. 또 한가지 덧 붙인다면 생각밖으로 많이 오해가 되고 있고 부당하게 비판당하고 있는 칼빈주의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를 좀 강하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글을 보면서 뭔가 유익을 얻으신다면 저야 좋구요. 그렇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남기고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계속 비숫한 주제로 글을 올릴 예정이니 느긋하게(?) 즐겨주세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