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회성
10월 14th, 2008 at 10:09 오후 - Hoon (단상) · Print
우리 사회에는 사회성에 관한 오해가 존재한다. 사회성은 누구와도 잘 어울려야 하며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어릴때부터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것이다.
누구와도 잘 어울려야 한다는 떼거지 개념의 사회성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며 모든 사람에게 맞추어야 하는 착한 아이를 만들 수 있고, 어린시절 분별력이 부족할 때 또래 아이들과 잘못 어울리면 욕과 폭력을 먼저 배우면서 자아에 깊은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배려깊은 사랑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아이들과 어울릴 때 먼저 적극적으로 놀이에 참여하기 보다는 뒤에서 지켜보며 혼자서 노는 경향이 강하다. 덩치는 큰 아이가 다른 아이들이 때리면 맞기만 하고 자기 물건을 빼앗겨도 엄마만 쳐다보며 울먹일 뿐 정당하게 찾아오지를 못한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는 우리 아이가 너무 소심한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오히려 남을 때리고 장난감 같은 물건을 확 빼앗아오는 자녀를 둔 부모는 매를 맞는 것보다는 때리고 빼앗아 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다른 것은 몰라도 사회성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멀리 보면 내 아이의 가슴에 폭력의 근원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지금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자식이 당하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사회성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도와가며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 아이의 사회성을 기르고 싶다면 먼저 아이의 눈빛을 보면서 배려깊게 사랑하면 된다. 아이가 부모를 쳐다보면 부모도 아이의 눈을 쳐다보고 아이가 이야기하면 온몸으로 정성을 다해 경청하고, 아이가 사물을 쳐다보면 부모도 함께 쳐다봐 줄 때 사회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길러진다. 부모가 아이를 한 인격체로 진심으로 존중해주면 어떤 누구도 함부로 내 아이를 대하지 못한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인양 함부로 대할 때 남들도 내 아이를 쉽게 규정해 버린다.
소방차를 좋아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매일 소방차를 보려 소방서를 방문하니까 친절한 소방서장님이 소방차를 태워주려 했다. 아이는 소방차가 좋아 구경하러 온 것이지 차를 타러 온 것은 아니었다. 차를 타기에는 아직 일러 차를 태워준다고 하니까 기겁을 했다. “아이가 소심하군요.” 무심하게 지나가면서 소방서장님이 한마디 던졌을 때, 아이가 기겁하기 때문에 창피해서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예, 우리 아이가 좀 소심해요”라고 아이 엄마가 대답했다면 그 아이는 자신이 소심하다고 평생을 무의식안에서 자신을 낙인 찍게 된다. 그러나 현명한 아이의 엄마는 “우리 아이는 소심하지 않아요. 다만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 감상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예요.”라고 말함으로써 아이의 호기심을 충족하고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웠다.
부모로부터 배려 깊은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분별력이 있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래서 말을 할 때도 직설적으로 하지 않고 돌려 말하며,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때도 먼저 관찰하기에 사회성이 없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배려깊은 사랑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어릴 때는 엄마하고는 대화가 잘되고, 또래 중에서 욕과 폭력을 모르는 자기성향과 같은 아이들과는 잘 어울리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과는 쓰는 언어가 달라 어울리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릴 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받은 상처가 적기 때문에 섬세하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발전하고, 누구든 편견없이 따뜻하게 대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뛰어난 리더쉽을 갖게 된다.
(배려깊은 사랑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