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빛이 멋진데…눈은 뜨고 있되 보지 못하는 것 투성이군요.ㅋㅋㅋ 얼마나 한정적인 것만 보고 있는지^^ 또한 내가 뭘 보고 봤다고 할 수 있는건지…^^ Seeing is Believing 그럼 뭘 믿는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볼 수 없는 것이 많은 만큼, 육안으로 보는 것 또한 믿을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음…아주 멋진데요? 덕분에 제 생각도 좀 풍성해 지는 것 같습니다. 조리개를 좁히고 슬로 셔터로 눌러버린것인데,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것 같아요~
빛이 얼마나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 잘 모르죠. 왜냐면 관심이 없으니까요~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혼에 관심이없어서 얼마나 많은 흔적과 사랑이 있는지 잘 모르죠~ 그래서 사랑할 수 없는거겠죠~
빛들이 저렇게 굽이 굽이 춤을 추지만 사실은 내가 휘청 거렸기 때문이죠~
내가 병들고 왜곡되었기 때문에 어그러질 뿐 ~ 쿄쿄쿄
야수파의 탄생에는 인상파보다 후기인상파 특히 정신적 면에서 고호, 선이나 색채등 기법적 면에서 고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생각되고요.
인상파와의 차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인상파는 시각적 리얼리티에 충실하려고 했습니다. 즉 그 순간에 보이는 대로 그리려했죠.
야수파는 그림이 대상으로부터 독립된 조형질서로 보고 자신의 정신과 주관을 표현하려고 형태나 색을 왜곡하였다는 점입니다.
이점은 후기인상파도 마찬가지인데 야수파는 고호나 고갱보다도 더 강열한 원색을 사용했습니다.
인상파 이후의 새로운 시각과 기법을 추진하기 위해 순색(純色)을 구사하고 빨강·노랑·초록·파랑 등의 원색을 굵은 필촉을 사용하여 병렬적으로 화면에 펼쳐 대담한 개성의 해방을 시도하였다.
새로운 색의 결합에 대한 기본적인 의도 때문에 이를테면 공기·수목 등에 붉은색을 사용하는 등 전통적인 사실주의의 색채체계를 완전히 파괴했으며 명암·양감 등도 파기하였다.
격렬한 정신의 표현과 강렬한 색채는 고흐의 작품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으나, 그림이 대상으로부터 독립된 색과 형에 의한 하나의 조형질서임을 확인시킨 점에서는 고갱과 나비파의 회화관에 연결되어 있다.
순수한 색채의 고양(高揚)에 기초를 둔 야수파운동은 결국 외계질서를 그대로 화면에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화폭을 자기 해방의 장소로 생각한 점 및 색과 형의 자율적인 세계를 창조하려 한 점 등에서 20세기 최초의 예술적 혁명이었다.
인상주의의 직접적이고 기쁨에 찬 자연의 포옹을 재생시키는 한편 후기인상주의의 고상한 색채의 대비와 깊이있는 정서적인 표현을 결합시키는데 만족했다.
이들은 모두 색채를 이전의 낡아빠진 묘사적 기능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야수파는 새로운 실험정신을 발휘한 작가의 색채를 통해 표현적 감정적 힘을 표현하고 과거의 전통을 깨는 것이다.
야수파는 넓은 추상적 색면을 중요시하여 묘사적 기능에서 조형적 자유를 추구했다.
따라서, 넓은 색면을 점차 추구하여 장식성을 강조하는데 그것이 세잔의 색면과 다른 것은 세잔은 보다 객관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그 의미에 있어서는 주관적인 색채 사용이 고흐의 고정을 계승한다고 하겠다.
결과적으로 야수파는 양식적인 변화에 주력하여 내용보다는 형태왜곡, 추상적 색채가 패턴화된 화면이 형태를 이루고 그림은 장식화된다.
일종의 조형적 표현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야수파 화가들은 반고흐와 고갱의 작품 속에서 예술의 본보기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색채가 이미 자연의 재현 수단이 아니라 예술가의 감동, 사념의 표현으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교훈이다.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보다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색채를 사용한다.’는 반 고흐의 말이 야수주의 자체의 정의일수 있다.
야수파의 색채의 항연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는데 야수파 화가들은 강한 개성과 기질,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화가들이었다.
야수주의의 일관된 특성을 추출해 내기란 매우 힘든데, 이론가와 이론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우선 우리의 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색채의 강렬함이다.
오직 순색조에만 의존하고 각 색조간의 직접적인 대비,거친 터치,종래의 투시법, 양갑, 명암법을 무시하고 색조의 뉘양스,전조를 묵살한다.
또한 색조의 순도를 살리기 위해 깊이의 공간 표현을 가능한 생략하며 배경도 대상과 동일한 강도의 색채를 쓴다.
이러한 방법은 결국 회화의 평면성에로 복귀, 장식성의 강조를 초래하며 공간을 오로지 색채에 의해 표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상주의는 명암과 광선의 효과를 색채에 의해 묘사하려 하였지만 야수파 화가들은 색채 자체에서 광선이 배어 나오기를 원했으며 광선이 색채의 조화 및 광휘와 하나가 되기를 원했다.
인상파는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 사조로써 일상 생활이나
빛을 받은 자연의 생동감 있고 수시로 변화하는 풍경에서 받은 화가의 인상을
바로 화폭으로 옮겨 담은 것이 특징이죠.
야수파는 인상파와 마찬가지로 일상 생활이나 자연을 직접 보고 그렸지만 인상
파와는 달리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튜브에서 바로 짜낸 화려한 원색들을
거의 섞지 않고 직접적으로 그렸습니다.
아하~ 그런 것이었군요~ 제 싸이까지 들어가 보셨다니~ ㅎㅎ 재미없는 사이트만 돌아다니신듯~ 저역시 묘사적인 그림 좋아해요~ 사실 전 그림은 다 좋아합니다~
마티스의 그림중에 제가 처음 감동(이라기 보다는 강한 느낌 정도?)을 받은 것은 ‘빨간 큰 실내’ 라는 그림하고 ‘기타치는 여인들’ 이라는 그림입니다. 그림에 대해서는 그저 제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이 좀~~ 거시기 하다고나 할까? 마티스의 내면은 잘 모르겠고요 그저 제 느낌이 좋아서 정도…
암튼 온통 빨간 실내에 의자가 중앙에 있고, 양옆에 역시 붉은 탁자에 정물이 있는 그림인데 실제로는 우리들의 눈에는 실내와 의자, 탁자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죠.
원근과 명암과 양감을 살려서 그려야 제대로된 물체로 보이겠죠. 하지만 내가 보는 관점에서 그런 원근과 명암이 생긴 것이지 실제로 벽이 그런 명암이나 원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죠. 만약 벽이나 의자의 실제(실존이든지 뭐든)를 나타낸다면(공간 조형) 결국 마티스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닐라향
said,
2월 28th, 2009 at 7:35 오후
이렇게 빛이 멋진데…눈은 뜨고 있되 보지 못하는 것 투성이군요.ㅋㅋㅋ 얼마나 한정적인 것만 보고 있는지^^ 또한 내가 뭘 보고 봤다고 할 수 있는건지…^^ Seeing is Believing 그럼 뭘 믿는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볼 수 없는 것이 많은 만큼, 육안으로 보는 것 또한 믿을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Hoon
said,
2월 28th, 2009 at 11:07 오후
어우…감이잘 안와요.
논설문으로 다시 설명해 주실 수 있으세연? ㅋㅋㅋ
바닐라향
said,
3월 1st, 2009 at 10:33 오후
무슨 논설문씩이나 ㅋㅋㅋ
별 얘기 아닌데 너무 어렵게 썼나보군요ㅋㅋㅋㅋ
서양 속담에 “Seeing is Believing”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며 본 것을 믿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봐야지 믿겠다고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의 육안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아주 작은 일부만 볼 수 있고
(위의 ‘빛의 질주’ 또한 제대로 볼 수 없는 것들 중의 하나고요)
봤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라고 할 수도 없고
또한 봤다고 믿을 수 있는 것만도 아니잖아요^^
(많은 눈속임이 존재하는 세상 - 마술도 그렇고, 착시효과를 십분 활용해서 날씬하게 보일려고 노력하는 내 허리 또한 그렇고 ㅋㅋㅋ)
위의 빛의 질주(빛의 행진) 사진을 보면서- 육안으로 제대로 볼 수 없는 건데, 특수 촬영에 의해 볼 수 있는 거겠죠?-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많은 것들에 대한 막연한 경이로움이 느껴져서 …^^
오히려 살면서 Believing is Seeing ? ^^믿는대로 보여지는 경우도 많지 않나요?
Hoon
said,
3월 2nd, 2009 at 12:26 오전
음…아주 멋진데요? 덕분에 제 생각도 좀 풍성해 지는 것 같습니다. 조리개를 좁히고 슬로 셔터로 눌러버린것인데,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것 같아요~
빛이 얼마나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 잘 모르죠. 왜냐면 관심이 없으니까요~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혼에 관심이없어서 얼마나 많은 흔적과 사랑이 있는지 잘 모르죠~ 그래서 사랑할 수 없는거겠죠~
빛들이 저렇게 굽이 굽이 춤을 추지만 사실은 내가 휘청 거렸기 때문이죠~
내가 병들고 왜곡되었기 때문에 어그러질 뿐 ~ 쿄쿄쿄
그당시 잠깐 생각해 본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티스 그림들이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바닐라향
said,
3월 3rd, 2009 at 12:59 오후
그림과 화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마티스? 야수파? 인터넷에서 찾아봤습니다.
야수파의 탄생에는 인상파보다 후기인상파 특히 정신적 면에서 고호, 선이나 색채등 기법적 면에서 고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생각되고요.
인상파와의 차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인상파는 시각적 리얼리티에 충실하려고 했습니다. 즉 그 순간에 보이는 대로 그리려했죠.
야수파는 그림이 대상으로부터 독립된 조형질서로 보고 자신의 정신과 주관을 표현하려고 형태나 색을 왜곡하였다는 점입니다.
이점은 후기인상파도 마찬가지인데 야수파는 고호나 고갱보다도 더 강열한 원색을 사용했습니다.
인상파 이후의 새로운 시각과 기법을 추진하기 위해 순색(純色)을 구사하고 빨강·노랑·초록·파랑 등의 원색을 굵은 필촉을 사용하여 병렬적으로 화면에 펼쳐 대담한 개성의 해방을 시도하였다.
새로운 색의 결합에 대한 기본적인 의도 때문에 이를테면 공기·수목 등에 붉은색을 사용하는 등 전통적인 사실주의의 색채체계를 완전히 파괴했으며 명암·양감 등도 파기하였다.
격렬한 정신의 표현과 강렬한 색채는 고흐의 작품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으나, 그림이 대상으로부터 독립된 색과 형에 의한 하나의 조형질서임을 확인시킨 점에서는 고갱과 나비파의 회화관에 연결되어 있다.
순수한 색채의 고양(高揚)에 기초를 둔 야수파운동은 결국 외계질서를 그대로 화면에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화폭을 자기 해방의 장소로 생각한 점 및 색과 형의 자율적인 세계를 창조하려 한 점 등에서 20세기 최초의 예술적 혁명이었다.
인상주의의 직접적이고 기쁨에 찬 자연의 포옹을 재생시키는 한편 후기인상주의의 고상한 색채의 대비와 깊이있는 정서적인 표현을 결합시키는데 만족했다.
이들은 모두 색채를 이전의 낡아빠진 묘사적 기능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야수파는 새로운 실험정신을 발휘한 작가의 색채를 통해 표현적 감정적 힘을 표현하고 과거의 전통을 깨는 것이다.
야수파는 넓은 추상적 색면을 중요시하여 묘사적 기능에서 조형적 자유를 추구했다.
따라서, 넓은 색면을 점차 추구하여 장식성을 강조하는데 그것이 세잔의 색면과 다른 것은 세잔은 보다 객관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그 의미에 있어서는 주관적인 색채 사용이 고흐의 고정을 계승한다고 하겠다.
결과적으로 야수파는 양식적인 변화에 주력하여 내용보다는 형태왜곡, 추상적 색채가 패턴화된 화면이 형태를 이루고 그림은 장식화된다.
일종의 조형적 표현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야수파 화가들은 반고흐와 고갱의 작품 속에서 예술의 본보기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색채가 이미 자연의 재현 수단이 아니라 예술가의 감동, 사념의 표현으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교훈이다.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보다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색채를 사용한다.’는 반 고흐의 말이 야수주의 자체의 정의일수 있다.
야수파의 색채의 항연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는데 야수파 화가들은 강한 개성과 기질,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화가들이었다.
야수주의의 일관된 특성을 추출해 내기란 매우 힘든데, 이론가와 이론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우선 우리의 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색채의 강렬함이다.
오직 순색조에만 의존하고 각 색조간의 직접적인 대비,거친 터치,종래의 투시법, 양갑, 명암법을 무시하고 색조의 뉘양스,전조를 묵살한다.
또한 색조의 순도를 살리기 위해 깊이의 공간 표현을 가능한 생략하며 배경도 대상과 동일한 강도의 색채를 쓴다.
이러한 방법은 결국 회화의 평면성에로 복귀, 장식성의 강조를 초래하며 공간을 오로지 색채에 의해 표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상주의는 명암과 광선의 효과를 색채에 의해 묘사하려 하였지만 야수파 화가들은 색채 자체에서 광선이 배어 나오기를 원했으며 광선이 색채의 조화 및 광휘와 하나가 되기를 원했다.
인상파는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 사조로써 일상 생활이나
빛을 받은 자연의 생동감 있고 수시로 변화하는 풍경에서 받은 화가의 인상을
바로 화폭으로 옮겨 담은 것이 특징이죠.
야수파는 인상파와 마찬가지로 일상 생활이나 자연을 직접 보고 그렸지만 인상
파와는 달리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튜브에서 바로 짜낸 화려한 원색들을
거의 섞지 않고 직접적으로 그렸습니다.
Hoon
said,
3월 3rd, 2009 at 2:09 오후
와우~ 알기쉽고 친절한 설명~ 땡큐입니다.
…그림이 대상으로부터 독립된 색과 형에 의한 하나의 조형질서임을 확인시킨 점…묘사적 기능에서 조형적 자유를 추구…개인적으로는 이 표현들이 마티스에 대해서 잘 표현한 거 같네요~
강렬한 색채도 특징적인것이지만 저는 그의 독특흔 공간, 조형을 좋아합니다. 실존주의가 생각나게 한다는 점도 좋구요. 그런면에서 다다나 큐비즘에도 관심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마티스가 좋네요.
바닐라향
said,
3월 3rd, 2009 at 3:12 오후
대화에 필요한 기ㅂ를 할려하니 기분 지식이 필
Hoon
said,
3월 3rd, 2009 at 3:39 오후
쿄쿄쿄 먼소리신지…오늘 오타는 해독 불능~~뿌커능~~쿄쿄쿄
바닐라향
said,
3월 3rd, 2009 at 3:45 오후
대화를 원활히 하는데 필요한 선지식이 없어서 ㅋㅋㅋ.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보다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색채를 사용한다.”
“자신의 정신과 주관을 표현하려고 형태나 색을 왜곡하였다.”
진짜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미술사조네요.
야수파들, 특히 마티스의 그림들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봤는데- 아는게 없어서 ㅋㅋㅋ- 그림에 감동하거나 공감하기에는 거리감이 있네요^^
설명이 곁들어지지 않으면 뭘 표현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고 ㅋㅋㅋ
그림보다는 해설에 더 감동받는 ㅋㅋㅋ 그림은 20%의 창의적 활동이고, 해설은 80%의 창조적인 작업이란 생각이 드네요.^^
뭘 그렸냐 보다는 어떻게 해설해 놓았냐(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그 작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 같은- 야수파의 특징 그대로^^- 생각이 드네요 ㅋㅋ
주인장께서 마티스의 어떤 그림이 보고 싶은 건지?…. 혹, 작품 자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자유롭게 표현한 마티스의 성향이 생각나신건지?^^
바닐라향
said,
3월 3rd, 2009 at 3:52 오후
이 페이지를 켜놓고 뭘 잘못 눌렀는지 오타가 등록되고 ㅋㅋㅋ 또 점심먹고 아이들 수학 공부 시키고 간식으로 스파게티 또 해 먹고 컴에 와보니 아까 쓰려다 중단한 답글이 있기에 마저 답글을 달고 나니 벌써 주인장께서 제 윗글에 댓글을 달아놓으셨네요 ^^ ㅎㅎㅎ
바닐라향
said,
3월 3rd, 2009 at 4:09 오후
아~ 오늘 정말 산만하다 ^^ 여기 앉아 생각을 한군데로 모을 수 있어서 좋네요^^
“그림이 묘사적 기능에서 조형적 자유 추구” “독특한 공간, 조형” ->NT답군요^^
주인장 옛 싸이에 그려놓은 그림들을 봤습니다. 묘사적인 기능도 뛰어나지만 의도하고자 하는 것의 특징을 잘 표현했고 창의적이시더군요.
But…
“인상주의의 직접적이고 기쁨에 찬 자연의 포옹.”
창조주가 만든 세상 특히 자연을 그래로 재현(묘사)하므로 내가 그의 일부분임을, 그 일부분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그것을 누리며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저에게는 큰 기쁨이기에 전 그림의 묘사적 기능을 좋아해요. 낡아 빠진 기능이지만 ^^
Hoon
said,
3월 3rd, 2009 at 10:18 오후
아하~ 그런 것이었군요~ 제 싸이까지 들어가 보셨다니~ ㅎㅎ 재미없는 사이트만 돌아다니신듯~ 저역시 묘사적인 그림 좋아해요~ 사실 전 그림은 다 좋아합니다~
마티스의 그림중에 제가 처음 감동(이라기 보다는 강한 느낌 정도?)을 받은 것은 ‘빨간 큰 실내’ 라는 그림하고 ‘기타치는 여인들’ 이라는 그림입니다. 그림에 대해서는 그저 제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이 좀~~ 거시기 하다고나 할까? 마티스의 내면은 잘 모르겠고요 그저 제 느낌이 좋아서 정도…
암튼 온통 빨간 실내에 의자가 중앙에 있고, 양옆에 역시 붉은 탁자에 정물이 있는 그림인데 실제로는 우리들의 눈에는 실내와 의자, 탁자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죠.
원근과 명암과 양감을 살려서 그려야 제대로된 물체로 보이겠죠. 하지만 내가 보는 관점에서 그런 원근과 명암이 생긴 것이지 실제로 벽이 그런 명암이나 원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죠. 만약 벽이나 의자의 실제(실존이든지 뭐든)를 나타낸다면(공간 조형) 결국 마티스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애가 자꾸 습격을 해서 이만 줄여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