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이스라엘이 사무엘의 활동 무대였다.

삼상 4 본문 : show

이스라엘의 1차 패배후(2)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전쟁의 결과를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 왕[1]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왕의 통치가 없는 것에 대한 결과를 분별할 수 없었다.

결국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생각해 낸것은 백전 백승의 기념물이자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전장에 참가 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여호와를 의뢰하고자 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이성 공략 실패후 이스라엘이 취한 행동과 비교해 보면 알 수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지 못한 이유를 알고자 했고,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한 자신들의 실패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권능’ 에는 관심 없이 어떤 행위, 마치 이방인들이 하는 것과 유사한 주술적 의미로서 언약궤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와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하는지 관심이 없이 ‘여호와의 궤’가 있으니 승리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신앙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의 태도는 곧이어 설명되고 있는 블레셋인들의 반응(7)과 거의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인격적 신에 대한 개념이 없이 단순히 주술적인 어떤 행위에 따라 미래가 정해지는 것에대한 믿음이 이스라엘이나 블레셋이나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에 대하여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마치 자판기를 이용하듯이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기대하는 어떤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맹목적인 신앙이 이방인과 다를바가 없다. 현대 그리스도인들, 특히 ‘복’에 중독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진하게 이러한 주술적 신앙의 냄세가 난다. 순종도 예배도 기도도 예물도 관계도 오로지 자판기의 버튼으로서의 역할을 위해서 준비된 것일 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마땅히 이루어질 약속(출 19:6)에 대한 믿음과 그 약속에 대한 당연한 반응으로서의 순종이 아닌, ‘복’ 이라는 결과를 위해서 순종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포되는 말씀도 ‘복’ 이 아니면 만족을 하지 못하고 설교자 또한 당연히 ‘복’을 신앙의 최종 목적지[2]인것 처럼 설교한다.
사실상 이스라엘의 비극은 바로 이것이었다. 비둔한 사사[3] 엘리, 그가 비극이다. 성경은 그가 여호와의 궤가 빼았겼다는 소식을 듣고 죽을때 그가 비둔(18)[4] 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영적 지도자들의 타락, 복음에대한 무관심, 선명하지 못한 죄에 대한 설교,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위로, 단지 단순 행위로 만족하게하는 신앙 지침들, 말씀연구에 게으름 그리고 성령의 임재가 없는 예배. 이스라엘의 비극은 곧 우리의 비극이다. 한국 교회의 비극이고,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락한 이스라엘이 사무엘의 활동무대 였다는 것에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다. 사무엘은 묵묵히 그리고 불평없이 그의 직무를 감당하며 이스라엘을 미스바에 모았다. 이것이 나에게 소망이며 위로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보내실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백성을 마침내 그의 백성답도록, 그리고 당신의 이름이 영화롭도록 역사하실 것이다.

이 소망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보며, 우리의 현실을 보며 불평과 비판과 투덜거림이 아닌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일한 사무엘 처럼 내가 그러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도전이기도 하다. 자, 그러니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1. 사울이나 다윗과 같은 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이스라엘에는 왕의 직무가 없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을 보호하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스스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임을 인정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back]
  2. 물론 당사자들은 부인할 것이다. 비록 그들이 복의 개념과 마땅히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 포장을 한다고 할 지라도 그들의 설교를 한번만 들어본다면 노골적으로 회중의 탐욕을 자극하기 위해서 ‘복’을 설명하는 것에 대하여 선명하게 알게된다. [back]
  3. 엘리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사인것은 아니다. 단지 이스라엘을 이끌었다는 의미(He had led Israel forty years / NIV)로 쓰여진 단어이다. [back]
  4.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heavy 혹은 fat 으로 번역하였다. 비록 외적인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영적 영민함이 무뎌진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탐욕때문에 자신의 명을 마친 에글론에게도 ‘비둔’(삿 3:17) 이라는 단어로 그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back]
Related Posts

RSS feed for comments on this post · Show Trackback URL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