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 - 헐리우드 키드의 대활약

소설가 안정효의 유명한 소설중에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가 있다. 독고영재, 최민수가 출연하여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그밖에도 다수의 번역작품들이 있는데 단편집들이 많고,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년간의 고독’ 같은 장편도 있다. 번역가로서의 능력도 출중하여서 사실 안정효의 글에 빠지게 된 것은 그의 소설보다는 번역집이 시작이었다. 가령 ‘백년간의 고독’ 은 많은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지만 안정효의 번역이 아니면 끝까지 읽기 힘들 정도이다.[1]
어쨌든 다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로 돌아가서, 극중 인물인 ‘병석’ - 헐리우드 키드 - 은 자신의 일생일대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명길’은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두지만 실은 그 시나리오는 수백편의 헐리우드 영화의 표절이며 짜깁기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있다. 영화에서 ‘병석’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명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도 속은거다. 헐리우드 키드에게 속은거야…”

사실 영화에서 제일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는데 아마 소설을 먼저 읽은 나로서는 소설과는 다른 ‘병석’과 결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중천’을 설명하는데 저것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저 ‘병석’의 말은 ‘중천’ 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마치 이 영화를 위한 대사처럼 생각되기까지 하였다.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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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삘이 아닌가?

영화는 시종일관 두 남녀 주인공의 국어책 읽는 듯한 대사[2]외에는 효과음과 배경음 뿐이다. 그렇지만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하등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수 없이 많은 비슷한 영화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정말 초보적인 예상마저 조금도 비껴가지 않는다. 또한 김태희의 모습은 ‘천녀유혼’ 의 ‘왕조현’ 바로 그것이다. 영화 초반 말을 타고 달려오는 정면샷은 너무도 흡사하다. 마치 왕조현 처럼 보이려고 분장한듯 한 느낌이다. 다만 공중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별로 우아하지 않다.

왕조현 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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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현보다 이쁘다. 하지만 우아하지는 않다.

게다가 이미 각종 영화에서 수고하던 검은 두건의 병사들을 그대로 모셔온 것이나, 그들에게 쫒기던 두 주인공이 낮은 내리막에서 몸을 피하는 모습은 ‘반지의 제왕’ 을 훌륭하게 재현했다. 최고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는 현란한 비주얼조차 ‘블레이드’ 에서 이미 본 것이고, 후반부로 갈 수록 같은 효과만 계속 보여줘서 나중에는 따분하다. 마지막 허준호와의 대결에서는 ‘풍운’ 과 흡사한, 하지만 그 웅장해 보이는 배경에서 겨우 앞 뒤로만 왕복하다 끝나버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각종 다른 영화들에서 보였던 장면이 겹쳐서 마치 패러디 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코믹하기라도 해야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중천’은 진지하지도 코믹하지도 않다. 다만 어정쩡할 뿐이다.

아마 측은하기까지 한 이 패러디 영화의 최종 편집을 마치고 ‘조동오’ 감독은 이렇게 속삭였을지 모르겠다.

“나도 속은거다. 헐리우드 키드에게 속은거야…”

그래도 김태희와 엄청난 제작비에는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 평점:★★☆☆☆

  1. 이것은 지극히 내 주관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안정효 번역의 그 책을 친구가 빌려가서 잃어버린 후로 대신해서 사준 최신 번역판의 책은 도무지 읽어지지가 않는다. [back]
  2. ’나 몰라?’ , ‘기억 안나…’ , ‘가지마…’ 이 세가지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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