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인 당신의 함정
5월 29th, 2007 at 11:03 오전 - Hoon (단상) · Print
한상궁 처소. 한상궁 앉아있는데.. 장금이 풀 죽어 앉아있다.
장장금 : (풀이 죽은 모습으로 앉아있다)한상궁 : (깊은 생각에 잠긴)
장장금 : ……
한상궁 : 곰탕이 오래 끓여야한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었을 게다. 헌데 왜 그리 늦었느냐?
장장금 : 좋은 뼈와 고기를 얻고 싶어서..
한상궁 : 왜?
장장금 : 금영이도 분명 좋은 것으로 할 것이고 (단호하게)꼭 이기고 싶었습니다.
한상궁 : 이번 과제가 무엇이었느냐?
장장금 :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새로 만드는 …
한상궁 : 백성들이 좋은 뼈와 고기로 탕을 끓여먹느냐?
장장금 : ……
한상궁 : 백성들이 네가 비법이랍시고 말한 타락을 넣어서 끓여먹을 수 있느냐?
장장금 : ……
한상궁 : 백성들이 곰탕을 먹는 이유는 좋은 고기와 뼈를 먹을 수 없기에 잡뼈로 우리고 또 우리어… 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빼내 맛에서나 몸에나 좋은 것을 먹기 위함이다.
장장금 : ……
한상궁 : 헌데 너는 오로지 이기겠다는 마음에 음식을 하는 기본 자세도 다 팽개치고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좋은 머리로 편법이나 생각해낸 것이 아니더냐!
장장금 : ……
한상궁 : 내 일찍이 네가 숯을 생각해내고 광천수를 생각해내 냉국수를 만들고 어선경연에서 숭채만두를 만들어내는 재기를 높이 사 너에게 맛을 그리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장장금 : ……
한상궁 : 그 재기(才氣)가 너에게 오히려 독(毒)이 돼버렸구나!
장장금 : ……
한상궁 : 정성과 마음은 다 버리고 좋은 재료와 비법만 찾아 헤매고 다니는 아이였더냐?
장장금 : …마마님…
유명한 대장금 시리즈 중 16화 초반에 나오는 대사이다. 장금이 뼈와 고기를 넣고 오래 끓여 내어 맛을 내는 설렁탕을 만들어서 경선을 할 때 자신의 재능만 믿고 뼈와 고기를 오래 끓여 맛을 내기 보다는 설렁탕에 타락(우유)를 넣어 맛을 내다가 한상궁에게 꾸지람을 듣는 에피소드이다. 후에 장금은 중전의 보모상궁의 병수발을 들러 갔다가 거기서도 같은 상황을 겪는다. 몇번이고 햇볓과 바람에 말려야하는 올게쌀을 순간적인 재치로 솥에 볶아서 만들어 내는데 결국 진짜 올게쌀의 맛을 내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장금이 실수한 것은 그가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서가 아니다. 그녀의 잘못은 그가 지금 만들고 있는 음식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지 혀끝에서 느껴지는 감각만을 위한 음식이었다면 장금이 만든 설렁탕은 훌륭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그런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랜시간 재료를 끓이고 우려내어 맛을 내야하는 것이었다. 뼈와 고기에서 모든것을 우려내어 진한 맛을 내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요리는 경선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설교자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설교자로서 설교를 한다는 것은 청중들에게 들려지는 강연을 하는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다시말하자면 청중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웃음을 짓게 만들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던지, 대단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전혀 알지 못했던 어떤 논리적인 사실을 이해하기 쉽고 매끄럽게 전달하고, 주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설교를 잘 하는것은 아니다. 아니, 엄밀히 말해 설교와는 동떨어진 어떤것일 수 있다.
설교라는 것이 어떤것인지 말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성경’ 이라는 분명한 텍스트에서 우러나오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설교자의 언변 이전, 이상의 것이다. 부드러운 음성과 고저, 리듬감있는 문장과 막힘없이 청산유수로 쏟아지는 단어들 이전에 가장 핵심적인 재료이고, 사실 전부이다.
아무리 듣기 좋은 설교였다 하더라도, 시의적절하고 감동적이었다 하더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부터 흘러나온것이 아니라면 청중의 영혼에 생명의 양식으로 전달될 수 없다. 설교자는 본문에서 캐낼수 있는 진리를 캐내어 보석과 같이 다듬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해주는 자이다. 그는 말씀속에서 진한 진액이 나오도록 우리고 우리고 우려내어서 하나님의 말씀속에 담겨있는 깊고 깊은 맛을 성도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설교는 반드시 ‘말씀’으로 부터 나와야 한다. ‘말씀’속에서 캐내어야 한다. ‘말씀’이 그 설교의 지지자 이어야 한다.
자, 이제 설교자인 당신을 보자. 당신은 함정에 빠져 있지 않은가? 당신의 설교는 말씀속에서 진액이 배어나오는 것인가? 설교할 본문의 말씀을 씨름하면서 우리고 우려내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설교자인 당신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맛있는 설교, 감칠맛 나는 설교, 금방 혀끝에서 느껴지는 맛을 위한 설교를 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설교가 아니라 당신의 작은 머리속에서 꿰어 맞춘 갖가지 상식과 성경지식이 춤을 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뼈와 고기에서 모든 것을 우려내어 진한 맛을 내는 설렁탕이 아닌 적당히 끓인 뒤 우유를 넣어 고소한 맛을 가지고 설렁탕을 끓여내려고 한 것이다.
장금의 재기가 분명 뛰어난 것이었겠지만, 결국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재기는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말재주가 분명 유용한 것이겠지만, 말씀속에서 진하게 베어나오는 진리가 아닌, 신앙 상식과 갖가지 예화와 매끄러운 말솜씨를 가지고 ‘설교’를 만들어 내고 있다면 분명 당신은 설교자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이제 분명히 아시겠습니까? 저는 제가 한 주 동안 삶에 대해 고찰한 바를 전하려고 매주 이 강단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복음 전파가 아닙니다. 저는 단순히 제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해설자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모든 내용은 제 앞에 있는 이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의 메시지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리기 위해 저의 말로 그것을 제시할 뿐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메시지 입니다.- D. Martyn Lloyd-Jon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