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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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을 '잔치'쯤으로 여겨서는 안돤다

환호성을 지르고 ‘호산나’ 찬양을 하는 무리들을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그리스도. 예루살렘을 소란스럽게 했던 그 분주함과 들뜸과는 별개로 그리스도 자신에게는 지독하게 고독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를 따르는 어떤 자도 지금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그리스도의 진짜 목적은 이해하지 못했다.[1]

소리 높여 ‘다윗의 자손 예수’를 찬양하는 자들은 불과 며칠 뒤 오히려 그를 향해 침을 뱉고 찢으며 죽일 터였다. 게다가 그의 12제자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그들의 구주가 되시며 구원자(메시야)의 일을 하시려 하는지 알지 못하고 서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싸우게 될것이었다.[2]

그리스도의 고난은 이땅에 오신 순간부터 이겠지만, 지금 종려나무 가지들 사이로 지나가시는 이 장면은 너무나 고독하다. 실로 고난이 시작된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피조물, 자신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인 인간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구원의 여정과 결심. 그리스도만이 바라보며 감당하시고자 하는 것은 완벽한 존재인 신으로서 그리스도만 경험하는 지독한 고독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본체이며, 완전히 만족하시고, 생명의 근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가 죄인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존재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송두리째 흔들며 두렵게[3] 하였던 그 형벌을 완벽하게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그 고독, 이 환호하는 무리들 속에서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었으리라.

  1. 비록 그들의 환영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감사하고 축하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무분별한 군중들의 환영을 구원의 기쁨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유치한 발상이다 [back]
  2. 누가복음에는 최후의 만찬중에 제자들이 서로 높임을 받기 위해 다투는 장면이 있다. [back]
  3. 막 14:33 - ‘심히 놀라다’ 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두려워하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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